헤겔전집을 읽을 대 베토벤을 들을 때
나는 의미를 소비하고
의미는 나를 소비한다
의미에 나를 담아두고
어언 십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나를 팔아먹고 비어 있다

의미를 소비하지 못하는 인간
그를 우리는 무식한
문화를 모르는 인간이라고 한다
자신을 상징으로 만들지 못하는 인간은
적어도 천재는 아니다
천재가 이 지상에서 한 일이라고는
모순을 한층 치밀하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오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수의 상징에 절하는 사람들
헤겔의 상징에 머리를 싸맨 사람들
베토벤의 상징으로 귀를 막아버린 사람들

헤겔전집 속에는
헤겔이 소비한 헤겔이
문자로 분해되어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선 모든 문자들을 조립해
만질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한 시행착오의 쓰레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실재인 자신을 버리고 허구를 살고 있는가

최종천